군대 이야기는 얼핏 들으면 주작 같기도 하다.
하지만 주작처럼 들린다면 그 이야기는 필시 100% 실화다.
특히 대표적인 폐쇄적 집단에서의 얘기를 듣고
“에이 설마”라는 반응이 나온다면 정말 실화다.
내가 들려드리는 11년 치의 이야기들은 모두 주작처럼 들리지만 분명, 그 시간과 그 공간에 오간 사람들이 그곳에 있었다.

때는 몇 년도였는지 기억도 잘 안 난다.
최초 1차 중대장 하러 갔을 때니까 대략 14년이 아닌가 싶다.
두 번째 일했던 곳이 조치원이었는데 그 당시 세종시가 그렇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멋도 모르고 스파크를 타고 충남대학원 야간을 다니며 쌩쌩 지나다녔던 곳이 지금은 너도나도 투자하려는 곳이니 말이다. 석사학위증이라는 몇천만 원짜리 종이쪼가리를 구매할게 아니라 마이너스 발생한 저렴한 세종시 신축 아파트를 매수했어야 하는 게 지금에서의 작은 후회다.
그렇게 칼퇴를 하며 대학원 다니던 나를 못마땅하게 보던 인사권자는 몇 개월 후 내가 대구에 중대장 자리가 나서 그쪽으로 옮기자 대구에 있던 인사권자에게 온갖 험담과 비난을 한 모양이다.
가자마자 좋은 환대는커녕 관심병사처럼 관찰과 감시 그리고 사소한 것까지 체크당하는 일상을 그 당시 나는 잘 몰랐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그때 그것들이 부조리란 것을 알았다. 어쨌든 3개월 후부터 대대 인사권자는 슬슬 사람을 갈구기 시작했다.
사회초년생에게 나의 작은 충고를 하나 주자면
이유 없이 갈구거나 갈구고 나서 챙겨주는 게 없다면 소위 “꺼져라”라는 뜻이다.
키우려고 갈구는 거랑 미워서 갈구는 것을 우리는 잘 구분해야 한다.
하지만 그 당시 미련했던 나는 그런 구분도 잘 몰랐고 그냥 열심히 출퇴근했다. 그러다가 결혼을 하게 되었고 시간을 내어 찾아가 예도지원을 요청하자 인사권자는 주임원사실에서 커피를 얻어먹다가 혼잣말로
“결혼… 그까짓 거 지가 알아서 하는 거지 뭐…”
……?!
나는 할 말을 잃었고 옆에서 같이 듣던 주임원사는 분위기가 좋지 않자 내게 나가라는 손짓을 보냈다.
내가 그렇게 미웠나?
새벽 5시에 시작하는 조찬기도회 안 나가서?
중대장들에게 반말하는 주임원사랑 한바탕 해서?
주말에 골프 안 따라다녀서?
주말에 교회 안 따라 나와서? (가끔 나갔다)
아니… 위에 것들을 꼭 해야 하는 것도 웃기다. 그 당시 중대장들이 5명이었는데, 나 빼고 나머지 3명(1명은 여군이라서 제외되었는데 누구 하나 터치 안 함, 그리고 나중에 소령진급)
은 정말 부지런히 위에 4가지를 참석했다.(참 대단들 하다)
심지어 어떤 일이 있었냐면,
교회 식사자리에서 내가 사이다 뚜껑을 따서 각 컵에 나눠 담게 되었는데 그 자리에서 대대 인사권자가 내게 말하길
“그렇게 하면 어디 가서 욕먹는다”
……에?
아니 뭐 술처럼 따라야 하나? 대낮, 그것도 주말 교회에서?
교회 나오는 길에 부사관 한 명은 내게 비꼬며
“사관학교에서 음료수 따르는 법 못 배웠습니까? 하하”
……?! 기가 막힌다.
서운한 감정과 분한 마음이 들었어도 참고 그냥 결혼하러 출발했어야 했다.
나도 참 정신 나간 놈이었는지 결혼휴가 출발하기 전날 밤에
부대가 담당하고 있던 탄약고 경계초소에 쳐들어가서 철책을 발로 차고 CCTV에 거수자처럼 보이게끔 하여 난리 나게 하고는 바로 휴가 출발했다…
1주일 후 복귀하자 갑자기 나를 대전에 있는 “정신교육원“으로 1주일짜리 교육을 보냈다.
다녀와서 여기저기 얘기를 들어보니 나에 대해 조사를 했다고 한다. 내가 그동안 어떻게 생활했는지, 뭐 잘못한 건 없는지 세세하게 조사했고 마땅한 게 없자 그냥 무마되었다 한다.
지금 다시 생각해 보니 그때 전역했어야 했다.
그 후로 정말 쓸데없는 걸로 갈구기 시작했다.
서있는 자세부터 당직스고난 다음날 당연히 피곤해 있는 모습을 가지고 갈구거나 주임원사 시켜서 새벽 4시에 졸고 있는 모습을 창밖에서 몰래 사진 찍기도 했다.
인사계(행보관)도 나를 경계했는지 슬슬 나와 어울리지 않고 대대 인사권자와 주임원사와 함께 골프나 치러 다니고 술 먹으며 나를 팽하고 실세들과 어울리기 시작했다.
심지어 바로 옆자리 선배는 갓 태어난 내 자녀에 대하여 왜 이리 일찍 태어났냐며 비아냥 거리기도 하였다.
그렇게 하루하루 정신적으로 힘들자 나는 부모님께 하소연을 하게 되었다.
부모님은 연줄을 동원하여 그 울타리 안에 있는 장성 인사권자에게 연락을 넣으셨나 보다…
어느 날 어느 때와 다름없이 대대 인사권자는 나의 행보관과 주임원사를 대동하고 골프를 치러 가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고급차가 옆에 스더니 뒷자리 창문이 내려가고 서로 안면식과 경계를 주고받은 후, 차 안에 있던 사람이 갑자기 소리를 지르며
“걔 OOO(내 이름) , 도대체 왜 장기가 안되는 거야!!!”
샤우팅을 들은 그 세명은 과연 정신 차릴 수 있었을까?
아마 골프 치러 갈 맛도 안 났을 것이다.
인사계(행보관)는 즉시 내게 오더니 자조치종을 설명했고 나는 그 당시 무슨 일인지 영문도 몰랐다.
그 일이 있은 후, 인사권자는 나에 대한 태도를 싹 바꿨다.
저녁에 갑자기 전화 와서 뭐 먹고 싶은 것은 없냐고 했고
갓 태어난 자녀에 대하여 선물을 주었고
평일 당직근무를 빼주었고
나에 대해 비아냥 거리는 간부들에 대하여 갈구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정말 아무도 날 건들지 않고 편하게 지냈다)
그 일이 있고서 그곳에서 떠날 때까지 남은 6개월 동안 배려보다는 힘이 우선이라는 더러운 현실을 느끼는 시간들이었다.
힘이 없었다면? 부모님의 동창친구가 처장급(소장)의 인물이 아니었다면? 나는 아마 결혼하고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자녀와 함께 매장됐을지도 모른다.
그 대대 인사권자는 분명 내가 죽도록 미웠을 것이다.
정말 날 쏴 죽여 없애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날 미워하는 가치보다 높은 사람에게 받는 미움의 가치가 더 컸던 게 아닐까?
내가 왜 군인이 되었을까?
나의 순수했던 학창 시절의 꿈은 그저 나라 지키는 군인이었다. 나는 순수한 군인이 되고 싶었던 것이지 정치질하는 정치인이 되는 것이 내 꿈이 아니었다.
내가 겪고서 깨달은 우리나라 군대는 철저한 정치집단이다.
전우? 애국? 국토방위? 국민생명보호?
아니다.
절대 아니다.
그저 울타리 안에서 서로 마주칠 때마다 오른손으로 눈썹을 때리는 정치권력집단이다.
배려보다는 힘에 의해 굴러가는 조직이 사회 여러 곳에도 있지만 대한민국 군대보다 더 자세히 설명해 줄 집단이 또 어디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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